집회가 끝난 뒤, 그들은 다같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밤 11시가 되기 전 대부분은 흩어졌다. 각자의 깃발을 들고, 각자의 분노를 여전히 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들은 무엇을 새로 얻게 됐을까? "대통령이 바뀌면 이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믿으세요?" 낮에는 한 기업의 신입사원이고 밤에는 그림작가로 활동하는 정채리(26)씨는 이렇게 답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희망이 생겼어요. 올바르지 않은 일에 대해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이 나라가 꼭 헬조선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사회를 긍정하게 됐다고나 할까요."
한 시대가 무너지고 있다. 무너지는 것 대부분은 '72년 체제'의 산물이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과 중화학공업과 수출주도 성장 전략과 저부담 저복지 체제가 들어온 시기다. 반대자에게는 폭력을, 측근에게는 특권을, 재벌에게는 독점을, 노동자에게는 저임금 일자리를 주는 전략으로 지탱하던 국가가 심은 씨앗들이다. 국가는 경제성장이라는 꽤 그럴듯해 보이는 대가를 얻었다.
구의역 사건의 근본 원인은 성과는 내야겠는데 비용은 치르지 않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공기업 효율화 정책이다. 지하철에 안전문이 생겼다면 그걸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데 비용이 추가로 든다. 세금이든 요금이든 지하철 노동자의 임금삭감분이든 내놓아야 한다. 공사 적자도 줄이고 빚도 줄여야 하니 인원도 비용도 절감하고 시간 맞춰 빨리빨리 작업하면서 승객에게 불편은 끼치지 말고 일터 안전은 모두 지키라는 말은 모두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